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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주변 지역 개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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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품에서 시민의 품으로

 

청와대와 주변 지역 개방의 역사


청와대가 자리잡은 지역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00여 년 전인 고려 숙종 때 남경에 이궁(離宮: 임금이 국도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으로 지은 연흥전(延興殿) 터가 있던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선왕조 초기에는 경복궁을 지으며 궁궐의 후원(後苑)으로, 임진왜란을 거치며 군사를 사열하는 연무장, 과거시험장,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어 모범을 보이는 친경(親耕)의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일제에 의해 기존에 있던 연무, 친경에 관련된 건물들이 헐리고 총독 관저가 지어졌습니다. 1937년에서 1945년까지 약 8년 동안 제7‧8‧9대 조선총독이, 광복 후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 중장이 3년간 사용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한국 정부로 이관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청와대 일대는 현대사의 명암과 궤를 같이 합니다.















이승만~전두환 대통령: 1948년~1988년
열린 청와대에서 닫힌 청와대로
대통령의 거주지인 청와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높았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그에 부응해 청와대를 개방하고자 했습니다. 1955년 4월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경무대를 청와대로 명명) 경내를 일부 공개한 것이 효시였습니다. 이는 관례로 정착되었습니다. 매년 4~5월 벚꽃 개화시기에 경내를 개방한 것입니다. 당시 시민들은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인 본관(일제 총독 관저로 지어진 건물로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시기 지어진 현 본관과는 다른 건물) 바로 앞에서 사진 촬영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청와대 앞길이 반세기 가까이 막힌 것은 1968년에 발생한 1·21사태, 즉 김신조 사건이 원인이었습니다. 청와대 앞길을 자유롭게 왕래하던 시민들이 1.21사태로 인하여 청와대 쪽을 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연례적인 경내 개방도 중단되고 청와대 주변도로 역시 전면 차단됩니다. 당시 관계기관에서는 대간첩 작전 계획을 재조정하고 대통령 경호를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청와대 앞길은 물론 인왕산과 북악산도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1988년~1993년
사람은 지나도 차량은 접근금지
청와대 일대의 삼엄한 경비는 20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금단의 구역과 같이 된 청와대와 주변 지역은 1988년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세운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조처의 일환으로 이전까지 통제되었던 청와대 앞길과 효자동과 궁정동 사이, 삼청동과 팔판동 구간을 열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주변 지역의 통제도 한결 줄이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청와대도 시민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지금의 경내개방의 효시로 전국 시‧군‧구로부터 희망 단체를 접수받아 경내를 개방한 것이지요. 하지만 개방이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되었습니다. 부정기적으로 단체 관람만 허용하고, 녹지원과 영빈관 등 일부 공간만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중단된 경내 개방을 재개한 것은 나름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같은 해 4월에는 인왕‧북악스카이웨이를 개방하여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관광 장소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차츰 경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개방의 의미는 갈수록 퇴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1993년~2003년
청와대의 문민화, 절반의 개방
청와대와 주변 지역의 개방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한 1993년 2월25일 청와대 진입로에 있던 바리케이드를 치우도록 했습니다. 청와대 앞길을 통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취임 3개월 뒤부터는 인왕산 등산로를 전면 개방하였습니다. 같은 해 7월에는 궁정동 안가를 철거한 후 무궁화동산을 조성하여 청와대를 바로 마주한 공간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1993년 9월에는 지금의 청와대 사랑채 자리에 있던 구 비서실장 공관 터를 활용하여 효자동사랑방을 개장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해외 국빈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전시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 것이지요. 이즈음 청와대 경내개방 코스가 확대되어 대정원 앞과 본관 가까이 있는 수궁터도 포함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에는 개인 관람을 허용하고 외국인까지 관람 대상을 확대합니다. 2001년 11월에는 청와대 서측에 면하고 있는 칠궁을 관람 코스에 넣어 원하는 사람들이 찾도록 하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2003년 ~ 현재
문을 열고 시민을 만나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들어서면서 청와대 경내 관람과 주변 지역의 개방은 전기를 맞이합니다. 경내 개방 관람객은 대통령의 집무 공간인 본관 앞을 경유하고 녹지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6년 4월에는 청와대 분수대 앞 국민친화적 순찰근무와 국군 의장대 시범 등 볼거리 제공으로 시민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습니다. 같은 해 9월엔 그동안 막아놓았던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을 개방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4월 청와대의 바로 뒤편의 북악산 성곽로를 개방하였습니다. 1·21 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었던 북악산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뒤를 이은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에 분수대 광장을 조성하여 시민의 접근성을 높이고 2010년 1월에는 효자동사랑방을 확대 개편하여 청와대사랑채를 개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이후 청와대 주변 경비가 삼엄해져 시민들로부터 멀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지역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거주하는 곳으로서 그동안 겪은 많은 비극과 아픔 속에서도 시민들과 함께 해왔고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7년 6월26일부터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개방하고 청와대 주변 5개 검문소의 차단막을 없애 시민 편의가 증대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1.21 사태 이후 통제되었던 청와대 앞길이 거의 50년 만에 전면 개방된 것이지요. 대통령경호실은 청와대 지역이 더욱 안전하면서도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데 이바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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