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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새내기 경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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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새내기 경호원  
신임직원 채용 전형에서 신체적 제한 폐지를 계기로 살펴본 시대별 경호처 인재상

 

지난 2016년 우리 처 직원들의 대학 전공을 살펴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공학 전공자가 23%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이 사회과학 18%, 체육이 17%, 인문이 13% 순이었습니다. 공학 전공자의 분포는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대통령경호처 신임직원 채용 지원자들은 과학자가 경호하는 시대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8년 대통령경호처` 경호공무원 공개 채용 전형이 시작되는 즈음에 채용 관련한 주요 흐름을 시기별로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박정희대통령 집권기

개인을 위한 절대적 충성심


개인을 위한 절대적 충성심

 

대통령경호처(당시 대통령경호실)의 정규 채용이 처음으로 이뤄진 것은 1966년의 일입니다. 이전까지는 5·16 군사정변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공수단과 해병대, 포병단 등에서 지원한 현역 군인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경호대에서 활동하던 측근 등이 경호원으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대통령 경호조직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해체될 조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1966년 민주공화당과 중앙정보부 등이 학군단(ROTC) 출신 장교 등 군 전역 예정자를 대상으로 공개 채용을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대통령경호처에서도 정규 공채를 실시해 민간인 6명을 경호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이들은 군 특수부대나 태권도협회·유도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인 1971년 두 번째 정규 채용이 이뤄져 경호직 16명과 통신직 5명의 채용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정규 채용이 이뤄진 것은 두 번 뿐이었습니다. 대부분 군이나 101경비단 등에서 필요한 인원을 일정 기간 단위로 파견 받아 근무하는 식이었죠. 제4공화국에서는 육사와 학군단 출신 장교 중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유신사무관으로 채용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통령경호실이 국가 경호조직의 틀을 갖추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박정희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무도 실력을 중심으로 인원을 충원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경호처의 역사도 박정희 집권기와 그 후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제5공화국  

경호원 채용을 널리 알리지 말라!


경호원 채용을 널리 알리지 말라!

 

대통령경호처(당시 대통령경호실)의 정규 채용이 처음으로 이뤄진 것은 1966년의 일입니다. 이전까지는 5·16 군사정변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공수단과 해병대, 포병단 등에서 지원한 현역 군인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경호대에서 활동하던 측근 등이 경호원으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대통령 경호조직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해체될 조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1966년 민주공화당과 중앙정보부 등이 학군단(ROTC) 출신 장교 등 군 전역 예정자를 대상으로 공개 채용을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대통령경호처에서도 정규 공채를 실시해 민간인 6명을 경호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이들은 군 특수부대나 태권도협회·유도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인 1971년 두 번째 정규 채용이 이뤄져 경호직 16명과 통신직 5명의 채용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정규 채용이 이뤄진 것은 두 번 뿐이었습니다. 대부분 군이나 101경비단 등에서 필요한 인원을 일정 기간 단위로 파견 받아 근무하는 식이었죠. 제4공화국에서는 육사와 학군단 출신 장교 중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유신사무관으로 채용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통령경호실이 국가 경호조직의 틀을 갖추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박정희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무도 실력을 중심으로 인원을 충원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경호처의 역사도 박정희 집권기와 그 후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6월항쟁 이후 민주화시대  

문호 개방했지만 무도와 체력은 기본


문호 개방했지만 무도와 체력은 기본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따른 민주화 열풍은 대통령경호처 신임직원 채용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전까지 군 특수부대 장교 전역자를 중심으로 제한경쟁으로 선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공개 채용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채용 공고가 신면 지면에 실리고 군필자라면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하지만 군 중심이라는 채용의 벽은 유지되었습니다. 지(智)·덕(德)·체(體)를 내세우며 두뇌순발력을 강조했지만 ‘경호원=무도’라는 선입견은 쉽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대통령경호처의 문호가 크게 확대되지 못한 것은 직업적 안정성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1999년까지만 해도 대통령 경호원의 신분은 별정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에서 경호원의 신분이 특정직 공무원으로 전환되면서 대통령 경호원이 선망하는 직업군으로 떠올라 지원자들의 전공 분야도 매우 다양해 졌습니다. 2004년부터 여성 경호원 채용이 이뤄지면서 경호 현장의 분위기가 차츰 부드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 경호의 획기적인 변화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전형 과정에서 응시자의 신장과 시력기준의 제한을 유지해 일정한 체격 조건을 갖춰야만 지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경호 위협요인이 크게 바뀌고 있음에도 신체적 조건이 뛰어난 무술 고수여야만 대통령 경호를 한다는 선입견이 오래 유지된 셈입니다. 무도 실력은 전형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공인 무도 단증은 필수 자격요건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촛불혁명 이후 국민주권시대   

과학적 마인드로 경호원에 도전


과학적 마인드로 경호원에 도전

 

2016 촛불혁명은 정권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데 경호조직도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대통령님의 시민과의 소통을 뒷받침하는 열린 경호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모든 사람을 경호 대상으로 여기면서 잘못된 관행과 낡은 제도를 바꾸며 수평적 조직문화를 실현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채용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를 추진했습니다. 신체적 제한을 두지 않아 누구나 대통령 경호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 차별을 해소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경호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신체적 조건이 경호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습니다. 몸으로 경호하는 2G 시대가 아닌 첨단 장비에 의한 LTE 혹은 5G 시대의 경호원상을 재정립하려는 것입니다. 어쩌면 경호원은 무술고수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게 관건인지도 모릅니다. 무술로 드론으로 피경호인을 공격하는 위해세력에 맞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경호대상자를 위협하는 것은 총칼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위협이 다가올 게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발차기를 잘한들 하늘을 나는 위협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LTE 시대의 경호원은 체력적인 조건보다 과학적 마인드가 더욱 요구될 것입니다. 대통령 경호원 채용 과정의 장벽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섹시한 몸이 아니라 섹시한 머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통령 경호원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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