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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지브 간디' 전 총리 암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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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개요

인도 '라지브 간디' 전 총리 암살 사건1991년 5월 21일 10시경 “라지브 간디” 전 인도총리는 총선 선거유세차 마드라스의 작은 마을에 방문하였다. 임시로 가설된 연단으로 걸어가던 도중 강력한 폭발물이 폭발하여 즉사하였다. 


    

❏ 사건 내용  

인도 '라지브 간디' 전 총리 암살 사건

* 폭발 테러 직전의 라지브 간디

 국민회의당 지도자인 ‘라지브 간디’ 전 인도총리는 총선 선거 유세차 1991년 5월 21일 오전 10시경 마드라스 서남쪽에서 50km 떨어진 ‘스리페름 푸두르라’는 작은 마을에 방문하였다. 지지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1만여명의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임시로 가설된 연단으로 걸어가던 도중 헐렁한 겉옷을 입고 지지자로 위장한 중년 여성이 간디에게 꽃바구니를 들고 라지브의 발등에 입을 맞추려고 허리를 굽히면서 팔꿈치에 장치된 버튼을 눌러 폭발시켰다. 순간 배에 두른 군용 폭약 RDX 700g이 굉음을 내며 터졌다. 이 폭발로 인해 ‘라지브간디’ 전 총리 등 25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다쳤다. 이 사건으로 간디 전 총리의 머리는 잘려나간 채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쓰러져 있었으며, 그의 복장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꽃을 든 여성이라 몸 수색 없이 접근을 허용한 게 큰 실수였다.

 

 

❏ 범인 관련사항

* 간디 폭탄테러 상상도/ 타밀엘렘 해방 호랑이(LTTE)

* 간디 폭탄테러 상상도/ 타밀엘렘 해방 호랑이(LTTE)

폭탄을 터트린 여성은 스리랑카의 무장 반군 단체 ‘타밀엘렘 해방 호랑이(LTTE)’의 관련자로 밝혀졌다. 타밀엘람은 스리랑카 독립을 위한 자살 폭탄 집단이다. 이 여성은 총리 시절에 맺은 스리랑카와의 협정으로 불만을 품고 폭탄테러를 가했다.


* LTTE 반군
1970년대 스리랑카 정부가 경제개혁을 단행하자 이 과정에서 토지를 빼앗긴 농부와 도시노동자들이 1972년 타밀엘렘해방호랑이(LTTE)반군의 전신인 타밀새호랑이(TNT)에 참여하면서 반군세력의 모태가 됐다. 그 후 1980년대 들어 스리랑카 지배에 반대하는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대거 반군 대열에 참여하면서 현재 약 1만명으로 세력이 늘어났다. LTTE는 80년대까지 구소련으로부터 군사고문단과 무기지원을 받았으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현재는 인도 내 타밀족과 반정부세력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후 2009년 5월 16일 스리랑카 정부군은 타밀 엘람 호랑이 반군을 격퇴하며, 전투 지역에 고립돼 있던 20만 명의 민간인들을 구출했다. 타밀 반군은 정부군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시인함으로써 25년 넘게 계속돼온 스리랑카 내전이 막을 내렸다. 



❏ 기타

 라지브 간디의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도 1984년 총리 재임 중 시크교도 경호원이 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간디는 어머니가 암살되자 국민회의 중진들의 추대로 총리직을 이어받아 제6대 인도 공화국 총리로 취임했고 이후 국민회의당 인디라파의 당수로 선출되었다. 이어 1984년 12월 원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였다. 그의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펼치며,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장려금 및 세금 혜택을 지원하고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컴퓨터, 방산, 통신 산업 등 과학 기술 관련 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했다. 다만 친 도시적·친 기업적 정책으로 빈부격차를 가속화 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외 정책으로는 높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파키스탄과 대화에 나서기도 했고, 스리랑카 내 타밀 분리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내용의 협정을 스리랑카 정부와 맺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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